호날두로부터 배우는 훌륭한 지구인의 자질
피파온라인 4의 스트라이커 GOAT 주멘의 실제 커리어는 어땠을까요? ㅋ 본문

피파 4 GOAT에게 당한 모두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피파온라인 4를 할때면 보정, 아다리가 있다는걸 깨달을때가 있는데요. 한국의 박주영 선수와 차두리 선수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보정과 아다리가 유독 심하다는걸 느낀 유저들이 한 둘이 아닐거라 생각이듭니다. 저도포함이예요ㅋ그리하여 오늘은 까더라도 알고까자 컨텐츠!
많은 선수 중 오늘 글의 주인공 박주영 선수는
어떤 커리어를 쌓아왔길래 이렇게 씨발사기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해볼까요~?
읽기 전 주의 ⚠️ - 이 글은 프로데뷔"후" 부터
유럽커리어까지를 다룹니다.
어릴때부터 천재로 주목받던 박주영 선수.
뛰어난 실력을 보이며 당당히 2004년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에 차출되어 6득점으로 역대 2위의 기록으로 대회 득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합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박주영 선수의 주가는 그야말로 연일 상한가를 갱신하며 한국의 스트라이커
계보를 이을 유망주로 손꼽히게됩니다.
청대와 대학무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박주영 선수는 대학선수 생활을 시작한지 겨우 1년만에 수많은 한국 프로팀들의 러브콜을 받았고 결국엔 영입경쟁에서 승리한 FC서울이 2005년에
"천재" 박주영 선수를 품게됩니다.이때 영입경쟁에 수많은 일들이 얽히고 설켜있으나 글에 쓰긴 너무 오래걸리니 그건 나무위키에서 알아서 찾아보세요~2005년 FC서울 32경기 18골 5도움역시나 천재라는 수식어가 괜히 붙은게 아니라는걸 증명하듯 갓 20살의 선수가 적응기도 필요없단듯이 프로무대에 올라오자마자 리그 19경기 12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그야말로 엄청난 활약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이때의 활약으로 K리그 역사상 최초 만장일치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리그 득점 2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으로 프로데뷔 첫시즌을
마무리합니다!
2006년 FC서울 32경기 10골 1도움
앞으로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박주영 선수. 그래도 역시 프로무대는 프로무대 인걸까요? 수비수들에게 약점을 파악당함과 동시에 집중견제를 당하며 작년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은 득점과 도움수를 기록하며 조금은 부진한 모습과 함께
시즌을 마무리합니다.
2007년 FC서울 15경기 5골
전 시즌의 부진을 딛고 다시 날아오르나 했지만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인해 총 15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하며 15경기 5골이라는 데뷔시즌에 비해 초라한 성적으로 마무리합니다.
2008년 FC서울 17경기 2골 4도움
FC서울에서 전반기 리그 13경기 2골 4도움을 기록하고 컵 대회에선 4경기 ^무^ 공격포인트를 기록하고 올림픽에 나선 후, AS모나코로 이적하게됩니다.
2008~09 AS모나코 35경기 5골 6도움

가자마자 10번 셔츠를 받으며 모나코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는걸 보여줬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모두가 반신반의하며 너무 이른 진출이 아니냐, 유럽은 K리그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 등의 부정적인 여론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한 부정적인 여론을 조용히하라 말하기라도 하듯 데뷔전 1골 1도움이라는 미친 활약으로 10번 셔츠를 받은 이유를 보여주며 모나코에서 단번에 주전자리를 꿰찹니다.
2009~10 AS모나코 33경기 9골 3도움
준수한 성적을 기록하며 AS모나코에 완벽히 적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리그 후반 막바지에 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마지막 경기는 뛰지못하고 시즌을 끝냅니다. 막바지에 당한 부상이 아쉽긴하지만 나름 나쁘지않은 시즌을 보냈습니다.
2010~11 AS모나코 35경기 12골 0도움
막바지에 당했던 부상의 여파인지 아니면 같이 손발을 맞추던 선수들의 이적때문인지 시즌 초에 부진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점점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폼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아쉽게도 한달짜리 부상을 당하며 아시안컵에 나가지 못했는데, 부상 이유가 무릎꿇고 기도 세레머니중에 신나서 기뻐하던 팀 동료들에게 깔려버린거기에 더욱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그래도 한달 뒤에 부상에서 돌아와 나머지 경기들에서 골을 때려넣으며 시즌 두자리수 득점에 성공했으나 결국 AS모나코는 강등당하고 맙니다.

2011~12 아스날 6경기 전설의 1골
모나코의 강등으로 인해 여러 이적설에 휘말리게 되었는데, 그 중 가장 이적에 가까웠던 LOSC 릴과 메디컬 테스트를 하며 계약 직전까지 갔으나 릴에 도착 할 예정이었던 날에 런던으로 런쳤습니다.
이로인해 이때 통수왕이라는 칭호를 얻으며
지금까지도 이때 일로 욕을 얻어먹습니다.
아무튼 아스날에서 9번을 받으며 기대를 모았으나,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딱히 활약을 보이지못하며 쓸쓸히 교체됩니다.. ㅜㅜ
하지만 대략 한달 뒤 다시 찾아온 선발출장 기회에서 전설의 인생마저 감아버린 슛으로 득점을 기록하며 아스날의 주전 자리를 꿰차버리나

싶었지만.. 반페르시가 아스날의 계속되는 공격수영입에 위기라도 느꼈는지
전설의 풀페르시로 각성하고..
박주영이 출장한 경기마저 잘 풀리지 않아
결국 토템 신세로 전락하게되며
다음시즌을 기약하게 됩니다..... ㅜ
2012~13 아스날 ^무^ 공포
힘차..진 않지만 어찌저찌 시작한 12~13 시즌!
전갈킥의 귀재 올리비에 지루(그 지루 아님 ㅋ)마저 아스날로 이적해버리며 박주영은 진짜로 토템이 되어버리고 만다. 결국 벵거 감독이 다른 팀을 알아보라며 직접 말까지 꺼내는 상황이 왔는데, 이 말을 한 날이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1골 1도움을 기록한 날이었기에 벵거의 계획엔 박주영이 없다는걸 반증하는 더욱 가슴 아픈 소식이었습니다.
결국 포돌스키에게 9번셔츠 마저 뺏겨버리며 이적설에 더욱 불을 올립니다. 이적시장 막바지에 셀타비고와 풀럼등의 팀으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돌다결국 셀타비고로 반쯤 쫓겨나듯이 임대를
떠나게 됩니다..
2013~14 셀타비고 25경기 4골 1도움
이번 시즌 18번 셔츠를 받고 셀타비고 생활을 시작한 박주영. 기본적으로 이아고 아스파스를 원톱으로 기용하는게 팀의 주된 전술이라 박주영은 주전자리를 꿰차긴 힘들어보였고 결국 아스파스와의 공존이 얼마나 잘되냐가 셀타비고 생활이 순탄하게 가냐 못가냐를 결정한다고 보면 됩니다. 아스날 시절에 비해 폼이 많이 올라오며 조금은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었으나 그 뒤로는 출전기회와 공격포인트 두마리 토끼를 다 놓치며 감독에게
팀이 바라는 수준을 맞춰주지 못하고있다
라는 디스를 듣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때 마요르카를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여 폼을 끌어올리고 선발출장 기회를 잡나 했지만 결국 뭔가 이뤄낸 것 없이 임대복귀를 하며 실패한 시즌을 보낸다.
2013-14 아스날 임대복귀 1경기 ^무^ 공포
임대기간이 끝나고 아스날로 복귀 후 여러 프랑스팀과 이적설이 돌았다. 아스날은 무료로 보내주겠다며 짬처리를 시도했고 상대 팀 측에서도 받아들였지만 선수측에서 연봉협상에 있어서 현재 받고있는 높은 금액을 고집해서 결국 모든 이적이 무산되었습니다. (참고로 이때 박주영의 연봉은 웬만한 팀의 에이스~준에이스 급이랍니다ㅋ) 이후 프리미어리그 25인 로스터에 이름은 올렸지만 리그컵 경기에서 후반 36분에 들어와 겨우 10분을 뛰며 1경기 출전에 그쳤다.
2013~14 왓포드 임대 2경기 ^무^ 공포
겨울 이적시장 막판에 어찌저찌 당시 2부리그였던 왓포드로 임대 가는 것에 성공합니다. 왓포드에서의 데뷔전은 브라이튼과의 경기에서 91분에 교체투입되며 치뤘다. 이때 뛴 시간은 딱 4분. 그리고 그 4분만에 옐로카드를 수집했다. 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박주영은 카드를 받은 적이 없었고 구단측의 착오로 생긴 해프닝 이었답니다. 이로부터 20일이 지나 볼턴과의 경기에서 선발출장해 간만에 한 건 해주나 싶었으나 교체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며 팀의 2:0 패배를 막지못합니다.
이 후 월드컵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이때의 오른 폼으로 왓포드로 돌아가 잘 하길 바랬지만 가자마자 부상을 당했다 ㅜ 이와중에 아스날은 악재가 연달아터지며 전반기 1등에서 후반기 4등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며 항상 앉아있던 승리의 박주영 토템을 유기했기 때문에 변(똥아님)을 당했다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아스날과의 계약을 연장 할 수 있었음에도 만료시키며 아스날 방출리스트에 오른다. 여러번의 통수와 아스날과 셀타비고, 왓포드에서의 실패로 인해 더 이상 5대리그에선 그를 찾지않았고, 결국 사우디 리그의 알 사밥으로 이적하며 아스날 생활을 완전끝마친다.
2014~15 알 사밥 7경기 1골
데뷔전에서 후반 12분에 교체 출전하며 0:0으로 끝날 것 같던 경기를 추가시간에 결승골을 때려박으며 팀을 승리로 견인합니다. 드디어 박주영의 유쾌한 반란이 시작되나했으나 결국 그 뒤로 보여준 것 없이 2015년 2월에 현지적응실패 라는 이유로 상호 계약해지하며 FA매물로 시장에 나오게되며
다사다난했던 그의 유럽 커리어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2015~21 FC서울 > 22~ 울산현대
그 뒤로 15년엔 FC서울로 돌아와 21년까지 뛰었으며, 22년 1월에 울산현대로 이적하여 1년간 뛰고 23년부터는 플레잉코치로 활동 중에 있습니다.
이렇게 주멘의 유럽 커리어를 알아봤는데요? 사실 박주영 선수가 아쉬운 커리어를 보낸건 사실입니다만, 박주영의 2010년 올림픽 3,4위 결정전의 면제로이드 맞고 뛴 미친 활약과 아스날에서의 인생마저 감아버린 감아차기는 아직도 회자됩니다.
물론 그렇게 성공했던 커리어라고 보기엔 어렵지만.. 그래도 한국에 올림픽 동메달을 가져다주고, 호박엿도 세상 맛있게 까드시는

미워할래야 차마 미워 할 수 없는.. 박주영 선수...
그래도 사랑하시죠...?

까더라도 알고깝시다.
축구 지식이 +1 되셨습니다. 축하드려요.